밀덕

히사마츠 5용사 이야기

gmmk11 2012. 2. 7. 07:14


전에 쓰시마 해전 그림첩을 번역하다가 미야코 5용사 이야기가 있었는데 제대로 알수가 없었다.






 근데 저번 일본여행에서 미카사 내부에 저 이야기가 있어서 사진을 찍은 후 관련네타를 더 찾아봤다.




일단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미야코섬과 이시가키섬 위치부터

 



미야코 5용사 이야기(일본위키)


1905년 5월 23일 오쿠하마 우시라는 나하의 범선승무원이 미야코지마 부근을 북상하는 발틱함대를 발견했다. 발틱함대도 그를 발견했지만 용 문양의 풍어깃발과 독특한 장발때문에 중국인으로 판단하여 체포하지 않았다. 


이렇게 욱일기 콱 박아놓은 풍어 기원 깃발이었으면 당장 걸렸을텐데 다행히 용문양이라 더 중국이랑 헷갈렸던 것 같다.ㅎㅎ

오쿠하마는 미야코지마의 히라라 항구에 26일 오전 10시경에 도착, 파출소의 경찰관과 함께 관청에 달려갔다.

당시 미야코지마에는 통신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섬의 장로 회의 결과 이시가키지마에 이 정보를 알릴 사자를 보내기로 하고 '가키하나 젠, 가키하나 쇼, 요나 하마츠, 요나 하우라, 요나 하우라 (다른마을 동명이인) 의 어부 5명을 선발했다. 5명은 15시간 170km의 거리를 사바니(류쿠 전통 나무배)로 필사적으로 저어서 이시가키지마의 동해안에 도착하여 거기서 30km의 산길을 넘어 27일 오전 4시 이시가키지마 야에산 우체국에 도착했다. 직원은 미야코지마 촌장으로부터 받은 문서를 기카하나 젠으로부터 받아서 전신을 나하우체국으로 타전, 나하우체국에서 나하현청을 경유해서 도쿄 대본영으로 전달되었다. (일본은 이때 대만까지 해저케이블로 유선전신을 설치하고 곳곳에 무선 중계/ 단말국을 둔 상태였음)


사진의 나무배 보다 작은데다 태평양 외해라서 파고도 높았을 것..




하지만 적 발견의 연락은 시나노마루에 의한 것이 몇시간 빨랐기 때문에 이 정보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후 한동안 5명의 행위는 잊혀져있었지만 쇼와시대에 들어 이 에피소드가 발굴되면서 교과서에 실리게 되어  5명은 오키나와현 지사로부터 표창받았고 향토의 영웅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일본의 군국경향이 심해지면서 좋은 떡밥으로 쓰였다고 한다.


히사마츠는 5명이 살던 마을의 앞 한글짜씩 따서 붙인 것.

미야코지마에는 위 사진의 기념비도 서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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