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

시베리아 억류기

gmmk11 2012. 2. 8. 19:25

http://kiuchi.jpn.org/nobindex.htm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베리아 억류기를 그린 키우치 노부오씨의 홈페이지

기계번역이지만 한글로도 볼 수 있다. 일한번역의 퀄이 높기에 대강의 내용이해엔 문제가 없는데..

내가 번역해서 올리고싶지만 전제 자제를 부탁하고 있기 때문에 링크만 한다.


*한글 번역은 크롬이 이상하게 에러가 나서 익스로 볼 것;; 구글번역인데 구글크롬 왜이래- -;




시베리아 억류는 주로 관동군, 만몽개척 식민으로 이민온 일본인 중 남성 60-75만이 소련으로 끌려가서 개고생하다 온 사건이다. 1/10 정도가 사망해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와중에 빨갱이 특성이 살아있는 에피소드가 있어 소개한다;;


수용소에서는 공산주의 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원래 공산주의자였거나 성향이 있었던 포로들이 크게 세를 불렸고 교육에 감화된 포로도 많았다.
'혁명' '계급투쟁' 사상을 키우기 위해 병졸과 하사관에게 사관을 때리게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농민출신이 많았던 병졸과 하사관이 열성 공산주의자가 되는 일이 많았던 반면 장교들 중엔 흔치 않았다 한다. 
공산주의자 포로들은 '민주운동'을 하여 혁명사상이 없는 포로들에게 반동, 전직자로 찍어 집요한 이지메와 노골적인 폭행을 가했다.(사망자도 나왔다 한다.) 

1945년 11월 일본정부는 관동군 포로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국을 통해 대소 교섭을 개시하여 1946년 12월 '소련지구 귀환에 관한 미소 잠정협졍'이 성립한다.
당시 소련과 친한 관계에 있었던 좌파 사회당의 국회의원으로 편성된 시찰단이 수용소를 시찰했는데. 포로와 함께 식사를 한 토가노 사토코 중의원의원은 무심코 '이렇게 맛없는 것을 먹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한다. 좌파사회당 시찰단은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일본인 억류자들이 부탁한 편지를 폐기하고 '아주 좋은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고 식사도 충분히 취하고 있다'고 국회에서 연설했다. 억류자 귀국 후 허위 연설을 한 것이 발각되어 문제가 되었다.

쏘 일 공동선언을 발표한 하토아먀 이치로*는 소련 방문 전에 '북방영토 반환이 최대의 과제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소련에 간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베리아에 억류된 일본인이 하루라도 빨리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다. 영토는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내일을 모르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고 시베리아 억류문제를 선결할 자세로 임했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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