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

의호 작전 義号

gmmk11 2011. 11. 19. 23:12

재미있는 작전이 있어서 살짝 위키 번역

1.1945년 5월 24일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육군이 의열공정대義烈空挺隊를 이용해서 행한 작전이다.  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욘탄読谷에서 차탄北谷에 이르는 서해안에 미군이 상륙하여 점령, 3일후엔 미군이 일본 비행장을 점령 활용한다.
일본육군은 이곳에 폭격기를 강행착륙시켜서 파괴활동을 실시, 비행장이 사용불능되었을 때 오키나와 주변의 미군군함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운다. 일반적으로 의호작전이라 하면 이것을 칭한다.
2. 1944년 11월 26일의 레이테 전역에서 일본군이 훈공정대를 이용하여 행한 작전이다. 레이테 섬의 미군점령하의 비행장에 고사의용대가 강행착륙하여 파괴활동을 실시. 의호라는 이름을 사용한건 이 작전이 처음이다.
* 고사의용대高砂義勇隊는 대만원주민으로 편성된 부대를 말한다. 전통적 생활을 하고 있던 고사족은 귀가 밝고 밤눈이 좋고 맨발로 소리없이 밀림을 뛰어다니는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동남아시아 밀림에서 유용한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일부 부족에 아직 사람사냥 같은 풍습이 남아있을정도 용감했고 강함은 고사족에게 미덕이었다.



의열공정대

1945년 5월 상순 육군 제 6항공군이 해군과 협의하여 의호작전을 입안.
「義号部隊ヲ以テ沖縄北、中飛行場ニ挺進シ敵航空基地ヲ制圧シ其ノ機ニ乗シ陸海軍航空兵力ヲ以テ沖縄附近敵艦船ニ対シ総攻撃ヲ実施ス」
[의호부대를 이용하여 오키나와 북,중 비행장에 강하하여 적항공기지를 제압하고 그때를 이용하여 육해군 항공병력을 가지고 오키나와부근 적함선에 대해 총공격을 실시한다.]
의열공정대에 의한 의호작전은 일본육군의 정규 공정부대가 오키나와 강습을 꾀한 특별공격(특공)이다.
의열공정대는 1944년 B-29의 발진기지인 사이판섬 아스리트 비행장 공격을 목적으로 편성된 중대 규모의 부대였지만 중계지점인 유황도가 미군손에 떨어지자  출격중지 후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이 결정되었다.

수송임무에 투입된 제3독립비행대 32명도 사이판 공격계획시에는 주임무였던 부대수송에 더해 착륙후의 B-29탈취임무가 새로 부가되었지만 오키나와 투입에서는 공정대 지휘하에 들어가 작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원은 장교를 포함하여 검은색으로 물들인 위장복을 착용, 100식 기관단총과 각종 소화기, 수류탄 10-15발을 구겨넣은 탄띠와 배낭, 파갑폭뢰 등으로 무장했다.

공수부대용 100식기관단총


파갑 폭뢰. 네 귀퉁이는 자석이다.


비행기 공격요령으로는, 대형중형기에는 동체에 포대기처럼 화약을 둘러서 절단 시키던가 날개 밑면에 붙여서 와꾸를 파괴, 소형기에는 수류탄에 의한 파괴였다. 시설, 군수물자는 폭파 또는 소이공격이었다.

의열공정대를 공수하는 제3독립비행대는 32명, 97식중폭 12기 편성으로 폭격기 1기당 비행대원 2-3명, 공정대원 11-12명이었다. 

일본기록
5월 24일 18:50, 12기의 97중폭이 육군 쿠마모토 비행장을 출격.
동일 22:11, 돌입을 알리는 무선입전, 12기중 6기가 북비행장에 강행착륙, 2기가 중비행장에 강행착륙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남은 4기는 엔진불량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귀환;;

 

미군기록
24일 22:30. 이에지마 방향에서 쌍발폭격기 5기가 저공침투, 북비행장(욘탄)에 1기가 동체착륙에 성공, 이 기체가 동체착륙한 상태와 동영상,사진이 아직도 전해진다. 비행중에 대공포에 맞아 전사, 기내에 그대로 남겨진 상태의 승무원사진도 전한다. 나머지 4기는 대공포화에 의해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동체착륙에 성공한 기체에서 10명정도의 완전무장한 공정대원이 예정대로 항공기 파괴활동을 실시했다. 
완파
F4U콜세어 2기
C-54 수송기 4기
PBY4-2 폭격기 1기
 

손상
B-24 1기
F6F헬캣 3기
F4U 22기

드럼통 600개 - 70000갤런의 항공유 화재 연소

25일 잔파미사키에서 사살된 일본병이 의호부대 최후의 한사람으로 추정됨.
미군 2명 전사, 18명 부상.

미군 조사에 의하면 확인된 일본병의 시체는 욘탄 비행장에서 13구,(기체 내에서 3구 포함).
비행장 주변에서 격추된 4기에는 각 14명씩 탑승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 전원 사망이었고 69구에 이름.

6월 12일에 공정부대원이 1명 생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누구인지는 판명되지 않음.(오키나와 전투중 미군전선을 뚫고 일본측으로 귀환. 그 후 생사불명)

비행장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손상시킨 일본군은 날씨문제로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후속공격에 실패한다- -;
미군은 성공적인 코만도작전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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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100명 넘는 최정예 공정대원 투입해서 비행장 마비시켰는데 날씨가 안좋아 후속작전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냥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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