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

이웅평 대령

gmmk11 2010. 1. 1. 20:01


구정 때 못모이는 친척들이 미리 모여서 이야기하던 중에 외할머니께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시대별이 아닌 이야기가 나온 순으로 쓴다.




1. 이웅평 귀순

외할머니께서 내가 만든 미그기를 보시더니 





이거 북한 미그기네??

깊은 회상모드로 들어가신다.


외할머니의 첫 이야기는

고 이웅평 대령이 할머니의 사촌동생이라는 것이다. -외할머니 큰아버지의 아들-
(이웅평 대령이 타고 온 미그기는 미그19였다. 내가 만든 모형은 미그21)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1.4후퇴 때 남으로 피난을 왔고 큰아버지 가족은 북한에 남았다고 한다.



여튼..


83년 미그기를 타고 귀순하는 뉴스를 본 외할머니 자매는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름때문에 설마설마 했는데 뉴스를 보니 정말 사촌동생이 맞는지라

당장 연락을 하려고 경찰서, 군부대에 연락을 하고 공군부대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었는데.....





돌아온 것은 안기부의 검은 찦차였다고 ;;;



외할머니의 언니가 검은 찦차에 태워져서 어디론가 갔다가 이틀뒤에 돌아왔는데 


간단한 조사?를 이틀간 받고 앞으로 절대 이웅평을 찾지말란 경고와 함께 등산화 2벌을 받아오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나중에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연락을 해보려했지만 언니가 정부기관놈들은 그놈이 그놈이라고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말려서

2002년 이웅평 대령 사망시까지 목소리 한번 못들었다고....


*위키를 찾아보니 고 이웅평 대령은 54년 생이다.


외할머니 가족이 남으로 내려올 때는 아직 안태어났을 텐데 어떻게 뉴스보고 한번에 알아맞췄는지 궁금; 그만큼 닮았었나 ㅎㅎ

이름이야 돌림자를 철저히 지키면 가능하리라 치고.









2. 피난 이야기

고 이웅평 대령 가족과 떨어지게 된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피난 이야기가 나왔다. 


외할머니 가족이 경기도북부-황해도 남부에 걸쳐서 살았는데 38선이 그어진게 하필 그 한중간이라 왕래가 매우 불편하게 되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한차례 남쪽으로 내려갈 때는 군율이 엄정해서 주민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안끼치고 


쌀을 매입하거나 징용/징발(주로 달구지로 탄약운반)을 했을 때도 값을 후하게 쳐줬다고..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황해도 구월산 모처에 피난가있으라고 한 뒤 소를 끌고 인민군 탄약운반 부역을 나섰다고 한다. 

씨름장사로 받은 황소와 본인의 체력으로 인민군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고 하네.

그렇게 해서 외할머니는 구월산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이미 기다리고 있던 다른 가족들과 만나 몇개월을 사셨는데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달구지를 끌고 서울 근교까지 따라가다가 시체도 점점 많이 보이고 밤이고 낮이고 포탄소리가 나는게 정말 전쟁인가 싶어서 황소와 달구지를 다 버리고 밤에 도망오신 것이었다.



그렇게 몇개월간 그곳에서 온가족이 모여사셨다고한다.



3. 월남 결심


산골마을에도 어김없이 완장 찬 사람들이 찾아왔고 뭔 이상한 홍보전단과 가입권유를 했다고 한다.


어디가입하면 뭘 주고 어디가입하면 뭘 주고 했다 하는데 피난올 때 챙겨온 식량과 종자가 충분해서 그냥 집에만 박혀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외할머니의 언니(당시 20세)가 농사 쉬는 시간에 '남쪽나라 내고향'을 불렀다가 빨간 완장들에게 끌려갔고 가는 도중에 심한 구타를 당하셨단다.


왜 남쪽 나라가 너으 고향이야!! 정정해!!

이런 선언을 강요받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순순히 그리했다고;


다행히 사촌누나 (위의 이웅평 대령의 누나쯤? 문맥상 살펴보면 큰아버지댁의 딸이니 맞는 것 같다.)가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다가 완장을 차게 되서
그녀의 변호로 무사히 풀려났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그때 월남을 결심했고 밤마다 기회를 엿봤다고...



4. 미군 등장

마을이 웅성웅성해서 나가보니 어느새 미군이 들어와있었고 외할머니는 시커먼 사람을 태어나 처음봣기에 엄청나게 놀라서 울었다고 한다. ㅎㅎ


당시 북한이 학교에서 가르치길..미군은 여자를 강간 후 각을 떠서 죽이고 아이는 다리를 잡아서 던지는 힘자랑을 한다고 겁을 줘서 더 무서웠단다.


미군이 여기저기 뭔가 붙여놓고 급히 사라진 후 바로 국방군이 와서 번역문을 붙이고 갔는데 


'기차역에는 접근하지 말것 
밤에 돌아다니지 말것

군무원 모집'


이정도 였다고..



또 국방군이 마을사람들에게 원성을 사던 빨간 완장 몇몇을 잡아갔는데 아주 시원했다고 한다.

사촌누나는 국민학교 선생님에 그냥 완장만 차고 있던게 참작되서 바로 풀려났었다네.



5. 중공군 등장

국방군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중공군이 내려왔다고 한다.


무기도 없이 악기만 들고 어깨부터 옆구리로 비스듬이 뭔가 매고 왔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옥수수가루라.. 빈집에 들어가서 솥에 그걸 붓고 휘휘 저어서
빵을 만들어 먹었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챙겨온 식량을 보고 이거 약탈하는거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


옥수수가루를 다 먹자마자 약탈을 해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쌀을 뒷마당에 파묻고 없다고 하면 집을 포위하고 몇몇이 쇠꼬챙이로 마당을 찌르고 다니면서 기어코 쌀을 뺐아갔다네.




외할머니의 아버지는 야반도주형식으로 쌀 40kg을 지고 온가족을 이끌고 황해도에서 나와서 동두천까지 내려오셨는데 산길, 계곡만 골라서 밤에만 이동해서 인민군,중공군,미군, 국방군을 한번도 안만나셨다고 한다.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서 동두천에 도착했을 때 지고온 쌀이 절반이 남았다고;;

외할머니는 피난 중에 졸면서 걷다가 새벽에 어슴푸레 길가로 주욱 널부러져있던 거적데기가 뭔지 몹시 궁금했는데 나중에 시체들이었단걸 알고 크게 우셨다고 한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동두천에 도착해서 며칠 후에 중공군이 따라내려와서 점령을 해버렸고 남겨온 쌀을 모조리 빼앗겼다고 한다;





6 미군의 반격


총소리가 심하게 나길래 집안에 꼭꼭 숨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미군이 들이닥쳐서 

'총인!! 췅인!!'을 외치더란다.


무슨소린지 몰라서 그냥 OK 제스쳐와 함께 옼케 옼케를 남발했는데


온가족을 미군기지로 끌고가더란다.



다행히 거기엔 통역이 있어서 '중국사람을 숨겨주지 않았느냐' 라고 제대로 물어봤고 아니라고하자 풀어줬다는데

청인이 중국사람을 말하는것이었고 미군 발음이 특이해서 전혀 못알아들었던 것이다.




7. 오빠의 죽음 


누나(20세) -큰오빠(18세) - 작은 오빠 - 외할머니 - 동생 

이렇게 5형제인데 

큰오빠가 영어를 익히는게 빨라서 53년초에 미군과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각잡힌 모자와 깔끔한 미군복을 입고와서 좋아하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신다네.

집에 미군에서 일하는 사람이 생기니 물자가 풍족해지고 먹을 걱정이 사라져서 모두가 좋아했다고 하는데


전쟁이 끝나기 몇주전 포탄 장약을 잘못다루다가 화재가 나서 크게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가망이 없으니 마지막은 집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그렇게 집으로 와서 이틀 후에 돌아가셨단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는데...


중공군은 대민정책을 잘 한 줄 알았는데 저렇게 엉망이었을줄이야;


미그19부터 구해야겠다. 트럼페터가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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