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치 곶 해전 Battle of Cape Sarych
일문위키에 정보가 자세해서 번역한다.
그 전까진 전노급함이 다구리로 노급함을 물리친 줄 알았는데 그냥 괴벤 혼자 못싸운거였다.
북..
참가 함정
오스만 제국
야부즈 술탄 세림 (괴벤) 만재 25,400톤, 25.5노트, 28cm 포 연장 5기,
미딜리(브레슬라우) 만재 5,281톤, 27.5노트 10.5cm 단장속사포 12기
러시아 제국
에피스타피 12,840톤, 16.5노트 30.5cm 연장포 2기, 20.3cm 단장포 4기, 15.2cm 단장포 12기
이오안 즐라토스트 : 에피스타피 급
판텔레이몬(포템킨) : 12,900톤, 16.7노트 30.5cm 연장포 2기, 152mm 단장포 16기
트리 스바치첼랴 : 13,318톤 16.5노트, 30.5cm 연장포 2기, 152mm 단장포 8기
로스치슬라브 : 10,520톤 15노트, 25.4cm 연장포 152mm 연장포 4기
사리치 곶 해전은 1차세계대전 초기에 크림반도 남단의 사리치 곶에서 러시아 제국함대와 독일-오스만 제국 함대 간에 치뤄진 해전이다. 사실상 전투는 러시아의 전노급 전함 에프스타피 Evstafi 와 독일-오스만 제국의 순양전함 야부즈 술탄 세림 (독일명 괴벤)의 1:1 전투였다. 야부즈 술탄 세림 (괴벤)이 다수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전장에서 도망친 것으로 전투는 종결되었다. 전노급 전함이 노급 전함과 정면에서 싸워서 승리한 희귀한 사례이다. (단 전장에서는 러시아군의 피해가 훨씬 컸음)
해전의 배경
1914년 8월 16일 독일 제국은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에게 지중해와 흑해의 우세를 점하게 해주려고 2척의 유력함을 인도했다. 이들이 오스만 제국해군에게 최신함이 되는 순양전함 야부즈 술탄 세림 (괴벤)과 마그데부르크급 소형순양함 미딜리 (브레슬라우)이다. 두 배는 오스만제국해군에 편입한 후에도 독일인 수병이 지휘했다.
이 2척의 존재는 흑해를 품은 러시아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흑해함대로 새로운 노급전함의 배치를 서두름과 동시에 구식화된 전노급전함의 근대화공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에프스타피를 시작으로 흑해함대의 주력함은 그럭저럭 근대적인 무장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흑해함대는 다가올 오스만 함대와의 충돌에 대비해 흑해상에서 연습에 종사했다.
해전의 경위
크림반도와 보스포로스 해협은 멀고 흑해함대의 전력도 제한적이었다. 해협봉쇄 작전행동에 참가하는 함정은 함의 조정과 승원의 휴식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때문에 러시아는 해협의 항구적인 봉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러시아의 구식전함에 대한 괴벤의 속력과 무장의 우위는 절대적인 것으로, 이 때문에 흑해함대는 단독행동이 불가능했고 각개격파를 방지하기 위해 연합함대를 짤 수 밖에 없었다. 흑해함대의 사령부는 괴벤의 속력을 29노트로 예측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보일러의 소모와 기초공업력이 후달리는 오스만의 수리능력 때문에 24노트 밖에 낼 수 없었다. (사실 베스트 컨디션일 때도 25.5노트였음). 그래도 이 속도 조차 러시아가 보유하는 가장 최신의 전함과 순양함의 그것을 상회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흑해함대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앞서 각 함이 협동하여 하나의 목표에 대해 집중포화를 하는 전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흑해함대는 괴벤과의 직접대결에 있어서 반격을 최소한으로 억누르면서 목표를 격파 또는 격침도 가능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력을 검증할 기회는 곧 찾아왔다. 11월 2일 흑해함대의 거의 전체 함정이 아나톨리아 반도 해안의 해상교통로를 목표한 군사작전을 위해 출격했다. 러시아 함선들은 오스만의 도시 트라브존을 포격하고 Z급 ,Zh급 구축함에게 호위를 받는 기뢰시설함 콘스탄틴 대공과, 크세냐 대공비는 트라브존에 123개, 프라탄에 77개, 우니스에 100개, 삼순에 100개의 기뢰를 설치했다. 이 정보를 얻은 오스만제국함대 사령관 빌헬름 소숀 Wilhelm Anton Souchon 해군소장은 적 함대가 세바스토폴로 귀환하는 때를 노려 영격하고, 조건이 좋다면 개별로 격파하려고 계획했다. 11월 4일 낮, 소숀 소장과 독일 측 지휘관인 R 애커맨 대좌가 좌승한 괴벤은 케토너 상급중좌가 지휘하는 소형순앙함 브레슬라우를 이끌고 포스포러스 해협을 나와 크림반도로 향했다.
이 날 흑해함대 사령관인 안드레이 에버하트 Andrei Eberhardt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세바스토폴로 향하는 귀로에 있었으나 무선통신으로 괴벤이 출격했다는 정보를 해군총사령부로부터 받았다. 속력부족으로 인해 사령관은 함대로 적함을 수색할 수 없었다. 에버하트는 경계를 강화하면서 항해를 계속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노린 바는 아니나 곧바로 바로 독일함을 향해 항로를 잡고 있었다.
해전의 추이
충돌은 11월 5일 얄타(얄타 회담의 얄타 맞음) 의 남서부, 헬소네스 반도에서 45해리 떨어진 사리치 곶의 해역에서 발생했다. 오전 11시 40분, 이 해역에는 함대주력보다 3.5해리 선행하고 있었던 수상기모함 알마즈가 큰 연기를 발견했다. 알마즈는 발견을 탐조등으로 향도함에게 알렸다. 동시에 적함은 무선통신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냈다. 연기의 저편에 괴벤과 브라슬라우가 있었다.
알마즈의 뒤에 종진으로 이어진 주력함대는 기함인 에프스타피(V.I.칼리닌 대좌), 이오안 즐라토스트 Ioann Zlatoust (F.A.빈텔 대좌), 판텔레이몬Panteleimon(나중에 포템킨으로 개명) (M.I.카시코프 대좌), 트리 스뱌치첼랴 Tri Sviatitelia (V.K. 루킨 대좌), 로스치슬라브 (K.A.폴렌프스키 대좌)의 5척의 전함과 제 1, 2, 3 수뢰함대 소속의 12척 구축함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러시아의 주력함대는 적함과의 거리를 좁히고 한편 구축함대는 밀집 대형을 취했다. 에버하트는 함의 속력을 14노트로 증속할 것을 명령했다. 30분 후, 알마즈는 함수 방향에 적함을 발견 이라는 보고를 전했다. 사령관의 명에 의해 알마즈는 우군함대를 향해 적함으로부터 이탈을 시작, 한편 함대와 알마즈 사이에서 항행중이던 러시아 방호순양함 파먀트 멜크랴 Pamiat Merkuria (M.M. 오스트로그라츠키 대좌)와 방호순양함 카굴(포그랴에프 대좌)도 곧 방향을 틀었다. 이 방향전환은 정말 시기 적절한 것으로 러시아 순양함은 속도에서 괴벤에 크게 뒤떨어져 있었고 만약 이 때 순양함들이 전열을 이탈하지 않았다면 이 중 한척은 괴벤에게 격파되었을 것이다.
주변에는 한층 진한 안개가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한 전투는 괴벤과 괴벤을 가장 잘 시인한 에프스타피의 1:1승부가 되었다. 전대의 사격관제는 이오안 즐라토스트에 승함한 V.M.스미르노프 포술장에 의해 지휘되도록 계획되어 있었지만 짙은 안개와 에프스타피의 포화가 쏟아내는 연기에 시야가 가려져서 적함과의 거리를 정확히 산출할 수 없었다. 이것들이 원인이 되어 무선은 '조준 60'이라는 잘못된 거리를 제시했다. 정확한 거리보다 1.5배정도 긴 것이었다. 때문에 전함전대의 포탄은 기함 에프스타피의 탄을 빼곤 모두 적함의 멀리 후방에 떨어졌다.
상호 포격은 14분간 계속되었다. 그간에 러시아 함은 7400m ~ 6290m 사이에 30발의 주포탄을 발사했다. 그 내역은 에피스타피가 12발, 아오안 즐라토스트가 6발, 트리 스바치첼랴가 12발이다. 판텔레이몬은 연기 때문에 적함을 시인하지 못하여 발포하지 않았다. 함대에서 뒤쳐진 로스치슬라브도 괴벤으로의 포격을 단념했다. 그 대신에 로스치슬라브는 블레스라우에게 254mm 포탄 2발, 152mm포탄 6발의 사격을 행했다. 블레스라우는 곧바로 괴벤의 사격권으로 이동하여 로스치슬라브의 포격권으로부터 도망쳤다.
에피스타피의 최초의 사격 중 수뢰전대 지휘관 M.P. 사블린 Mikhail Pavlovich Sablin 대좌는 구축함대를 이끌고 괴벤에 수뢰공격을 실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10분 후에 함대사령관으로부터 수뢰공격 중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에프스타피의 연장포를 이용한 최초의 일제사격은 괴벤을 제대로 맞췄다. 포탄은 150mm포 제3 장갑포좌에 명중하여 장갑판을 뚫고 폭발하였고 포수 12명이 전사했다. 또 몇명이 가스중독을 일으켜 후에 사망했다. 에피스타피의 최초의 포화도 정확했다. 괴벤은 최종적으로 3발의 305mm 포탄과 11발의 203mm 포탄 또는 152mm 포격탄을 맞았다. 한편 에피스타피는 4발의 명중탄을 맞았다. 14분 후 괴벤은 빠른 속도를 살려 전장을 이탈했다.
해전의 결과
이 해전의 결과로 괴벤은 2주간에 걸친 수리를 위해 부대편성에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괴벤에서는 사관 12명, 수병 103의 전사자가 나왔고 사관 5명, 수병 5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함내 인원수가 너무 많아서 였는데 정원 편성 1053명에 독일수병, 오스만 수병 합쳐 1200명 이상 탑승하고 있었다.
한편 에피스타피는 58명의 승조원을 잃었다. 이 중 33명은 전사하고 25명은 부상이었다.